12명의 배심원들과 만장일치
아버지를 죽인 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소년은 이제 배심원들의 평결만 남겨 둔 상황입니다.
12명의 배심원은 논의를 통해서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야 하며, 소년이 유죄라고 평결하면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배심원들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판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정황상 소년의 유죄가 의심되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회의적인 태도로 토의를 시작합니다.
12명의 의견을 투표한 결과는 11 대 1로, 8번 배심원 한 명만 유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1명이 유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본인마저 손을 들면 소년은 죽게 되므로,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증거와 증언을 확인해 보자고 합니다.
8번 배심원은 논리적인 태도를 보이며 증거물로 제시된 칼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칼이었고 증인들의 증언에도 허점이 있음을 검증해 냅니다.
그의 진지한 태도와 논리에 다른 배심원들도 하나둘씩 의견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결론에 도달한 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합리적인 의심의 필요성
이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작품으로 1957년 개봉작이지만 현재까지도 법정 영화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리지날드 로즈의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연극적인 연출과 제한된 공간에서의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년이 어떤 죄를 저질렀고 증거가 증언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배심원들의 대화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범죄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채워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배심원들은 논의를 통해서 만장일치라는 결과에 도달해야 합니다.
만장일치로 유죄라는 결론을 내리면 12명은 소년의 죽음에 똑같이 책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범법자를 체포해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닌 무고한 사람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법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법은 집행자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법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심을 통해서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배심원들은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사건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덥고 좁은 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그들은 유죄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시작합니다.
8번 배심원만이 증거와 증인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가장 먼저 자신의 의견을 바꾼 인물은 9번 배심원입니다.
그는 배심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데 자신의 경험을 논리로 녹여내어 증언의 허점을 밝혀냅니다.
증언을 했던 노인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기 말을 남들이 들어주기 바란다'는 노년층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빈민가 출신인 5번 배심원이 의견을 바꾸게 되는데, 그는 계급 구조에서 상대적 약자로 공감을 통해 문제를 바라봅니다.
배심원들의 의견이 점차 유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쪽으로 흘러가자 자신만의 논리가 약한 사람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 의견에 편승하는 모습입니다.
주변인들이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양심적인 한 사람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의 양심도 깨우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10번 배심원은 혐오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논리 없는 주장만 하는데 결국 다른 배심원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행동을 취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angry men'이라는 제목처럼 각자 화를 내는 상황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뜻을 보이면서 등을 돌리는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분노처럼 보였습니다.
편견은 진실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며, 편견에 의해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도덕적인 양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소년이 유죄라고 주장하는 3번 배심원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면서 유죄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우깁니다.
유죄라고 생각하는 근거도 없이 감정과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경우가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하고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수 대 소수인 상황에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만약 8번 배심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장 먼저 유죄가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을지, 다른 사람들의 설득에 휘둘리지 않았을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첫 번째 사람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바른 양심과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서 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민주주의를 잘 그려낸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