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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메이 디셈버 후기

by mobeemoon 202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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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의 불완전한 시선

영화배우 엘리자베스는 촬영 예정인 실화 기반 영화의 배역 준비를 위해 해당 이야기의 실제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향합니다.

한때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주인공, 그레이시와 그녀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입니다.

20여 년 전, 그레이시는 23살 연하인 아들의 학교 친구와 연인관계라며 충격적인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 일로 수감되고 감옥에서 조의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현재 그레이시와 조는 결혼해서 자녀 3명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레이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엘리자베스를 경계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두 사람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평온해 보였던 그레이시와 조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

영화 제목인 'May December'는 나이차가 많은 커플을 가리키는 영어 관용구라고 합니다.

23살 차이의 커플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자극적인 영화인가 싶을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 영화입니다.

인물들의 명확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을 따라가며 감상하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36살의 여성과 13살의 미성년자 남성의 사랑이 정말 순수한 사랑이었는지, 그레이시는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조는 지금 삶이 행복한지 그런 궁금증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와 조는 현재 36살로, 그레이시가 조를 만난 시절의 나이와 같습니다. 둘은 같은 나이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는 대학 입학을 앞둔 아이가 있는 반면 엘리자베스는 아이를 갖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어버린 조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그의 내면은 아직 13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레이시가 조의 관계는 평등한 부부의 모습이 아니라 상하관계처럼 보입니다. 그레이시가 조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는 그런 그녀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그레이시를 만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에게 심리적 지배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2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스스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조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아들과 함께 지붕 위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아들이 아빠보다 더 성숙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레이시와 조가 처음 만난 곳이 'pet shop'이라는 점에서 그레이시는 조를 pet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등장 이후로 조의 내면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조가 키우고 있던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마지막 장면처럼 조 역시 뒤늦게 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조의 모습을 찰스 멘튼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체는 30대이지만 표정이나 자세는 10대처럼 느껴지게 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찰스 멘튼은 이 영화로 22개의 연기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반면 그레이시는 자신의 선택이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고 믿고 그래서 자신의 가정이 남들에게 잘 보이기 바랍니다.

조와 자신은 진정한 사랑이 맞다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시키며 피어오르려는 죄의식을 지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었다면서 왜 그때의 이야기를 못 꺼내게 하느냐' 조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피하려고 합니다.

과장된 착각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본인의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레이시의 삶을 관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관찰한다고 해서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거울을 통해서 인물을 비추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 사람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의 졸업식 날, 그레이시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을 이제 이해할 수 있겠냐고 묻고 엘리자베스는 이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연기하는 그레이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촬영 현장은 그 대답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쉽게 소비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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