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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차이를 통해 나아가는 일상, 미망 후기

by mobeemoon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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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네 가지의 뜻,  미망

미망( 迷妄) :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종로 거리를 이어폰을 낀 채 통화를 하면서 이동하고 있던 남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여자와 재회합니다.

친구인 듯 전 연인인 듯 보이는 둘은 여자의 목적지인 서울극장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여자가 떠나고, 남자는 여자가 담배를 피운 자리에 가서 같은 모습으로 끊었던 담배를 피웁니다.

그리고 그림을 가르쳐주는 현재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미망 (未忘) :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여자는 폐관을 앞둔 서울극장에서 한국 최초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 작품으로 영화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함께 일한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획 팀장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같이 걸어가기로 합니다.

팀장과 종로의 거리를 걸으며 영화에 나온 인물에 대입해서 질문을 주고받고 팀장은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감정과 자신은 아이는 있지만 아내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미망 (彌望) : 멀리 넓게 바라보다

절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남자와 후배, 여자는 함께 후배의 택시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회포를 풀기 위해서 예전에 자주 가던 술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일이 생겨 먼저 자리를 뜨고 남자는 버스를 타고 돌아갑니다.

 

미망 (微望) : 작은 바람 

남자가 내리고 버스는 계속 거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반복과 차이를 통해 나아간다

제목의 '미망'이란 말은 같은 모양의 단어이지만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의 영어 제목도 'Mimang'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작은 바람'이라는 뜻은 실제 단어의 뜻은 아니지만 한자 두 가지를 조합해서 만들어 낸 말이라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끝나고 그 이후 시간이 달라지면서 공간과 기억도 달라지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속 남자와 여자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극 중 죽은 인물로 설정된 '정수'만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 시점인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인물과 시간을 특정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거라는 의도에서 연출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 나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어렴풋한 암시를 통해서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변화를 상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남자가 부르는 장기하의 '별거 아니라고' 가사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함께였을 때는 남은 시간은 모두 약속했었지. 잡은 손 놓칠 일 없이 무덤까지 걸어갈 거라며 깔깔거리며 웃곤 했었지.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가버렸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의 약속을 했지만 결국엔 단 한 개로 지키질 못했어'

 

영화의 주요 배경은 '종로'입니다.

종로는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어우러지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그중에서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주제로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동상은 이전될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건물들이 철거된 것처럼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라지기도 하고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변했지만 여전히 이어져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지만, 그곳에 있었음을 자각하는 마음을 장소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그 안에서 반복과 차이를 통해 나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매일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자리라고 생각하지만 제자리가 아님을, 직접적인 사건 대신 암시적인 표현과 대사를 통해서 한 편의 시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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