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 두 가지의 갈등
영화가 시작되면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러 상인을 보여주다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여성이 나옵니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일하던 장소를 벗어나고 그녀가 만난 남자는 여권을 구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둘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 여권을 구하고 있었고 함께 유럽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남자 '박티아르'는 여자 '자라'에게 먼저 떠나면 뒤따라서 가겠다고 하지만 자라는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면 싫다고 합니다.
자라가 화를 내고 돌아가버리고 남아있는 남자의 모습 위로 '컷!'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까지는 촬영 중인 장면이었고 그 장면을 모니터로 보고 있던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배우의 위치와 감정에 대한 지시를 내립니다.
이란 정부로부터 출국금지령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는 촬영 현장인 튀르키예와 인접한 한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터넷 신호조차 잘 잡히지 않아 영화 제작진과 통화 연결이 어렵지만 그는 현장 가까이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조감독이 찾아와 밀수업자들의 경로를 통해서 국경을 넘는 방법이 있으니 같이 촬영 현장으로 가자고 설득하면서 국경선 근처로 감독을 데려가지만 그는 끝내 국경선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들이 그에게 찾아와 젊은 남녀의 사진을 찍었느냐고 묻습니다.
고잘이 전통으로 맺어진 야곱이 아닌 다른 남자 솔두즈와 함께 있었고 그 모습을 파나히 감독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사진을 두고 마을 사람들과 감독의 갈등,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소통의 단절로 인한 문제들이 점점 생겨납니다.
억압적 체제에 굴하지 않는 용기
자파르 파나히 (Jafar Panahi) 감독은 이란 정부의 검열에 대항하는 사회적인 내용, 자신에게 가해진 탄압과 그에 대한 대항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감독입니다.
실제로 반체제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년 동안 영화 제작할 수 없고 인터뷰와 출국도 금지당합니다.
이러한 감독 자신의 억압되고 제한적인 상황을 영화에 담아 감독 본인이 출연합니다.
그리고 극 중 '자라'역할을 맡은 미나 카바니 배우는 반대로 이란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입장이라서 실제 영화 제작이 원격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파나히 감독은 약혼식에 가는 간바르에게 그 현장을 촬영해 달라면서 그에게 카메라를 넘겨줍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간바르가 찍어온 영상에는 감독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있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감독은 '찍어야 할 때 정지를 눌렀고, 정지해야 할 때 시작을 눌렀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 역시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순간, 비극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떠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영화는 언론의 영역이 아니라는 감독의 생각을 담으면서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진실은 프레임 바깥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No Bears
마을 사람들은 본인들이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여러 번 말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전통을 내세우고 맹목적인 신념을 보이고 있습니다.
파나히 감독이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메모리카드를 넘겨주지만 계속 감독을 몰아세우면서 신 앞에서 맹세를 해달라고 합니다.
친절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불신과 의심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에게서 선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의라는 것이 받는 사람의 입장이 우선시 되지 않고 선의를 베푸는 사람의 일방적인 행위가 되면 오히려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시달려 결국 맹세식을 하기 위해 가는 중에 파나히 감독은 한 주민이 '이 길로 가면 곰이 나오고 위험하니까 차 한잔 마시고 나와 함께 가자'라고 권유합니다.
그 주민은 차를 마시는 동안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라며 조언을 하고 사실 곰이 나온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밝힙니다.
세상에 두려움을 만들면 권력을 휘두르기 쉬워진다는 것을 이 마을에서는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전통은 여자 아기가 태어날 때 미래의 남편이름으로 탯줄을 자른다는 것처럼 여성들의 권리는 무시되고 가부장적인 사고로 만들어진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파나히 감독이 고잘과 솔두즈의 사진을 진짜로 찍었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그는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 좋은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거짓말일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독은 그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마을에서 사진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동안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박티아르의 여권이 가짜라는 것을 숨기고 둘이 함께 떠나는 장면을 연출하는 감독에게 자라는 자신의 삶이 가짜로 만들어버렸다며 화를 냅니다.
사실만을 근거해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원하는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은 생략해 버린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두 커플을 도우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비극적인 결말만 남게 됩니다.
영화를 통해서 과연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은 옳은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