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홀로코스트 영화
영화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화면 위로 기괴한 음향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다가 화면이 밝아지고 투명한 햇살 아래 평화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루돌프 회스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화목한 가족들의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금니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아내인 헤트비히 회스는 정원에 다양한 꽃과 작물을 키우고, 수용포로들에게서 빼앗은 물품들을 친구들과 나눠가지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모습만 보고 있으면 담장 너머에도 이들의 집처럼 평범한 가족들이 지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헤트비히 의 친정어머니가 방문하고 밤에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에서 담장 밖이 얼마나 끔찍한 지 알 수 있었습니다.
루돌프 회스가 밤이 되면 온 집안의 불을 끄고 나면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소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소녀는 밤이 되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서 몰래 음식을 숨겨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퇴거당하지 않고 남아있던 일반인들이 알게 모르게 포로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루돌프 회스가 발령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헤드비히는 정원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남편 혼자만 떠나라고 합니다.
루돌프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작전을 맡게 되고 아내에게 이 사실을 전하면서 파티 도중 가장 효율적으로 가스실에 포로들을 넣는 방법을 생각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통화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구토를 하고 화면은 전환되고 현재 시점에서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국립 박물관을 청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신발들만 봐도 그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소부들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은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해서 그 사실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실제 인물과 배경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실제 인물인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드비히 회스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루돌프 회스는 1940년 5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소장으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게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1947년 사형선고를 받고 그 해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는 상부의 지시를 의심 없이 충실히 따르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비판의식이나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포로들을 위해 음식을 숨겨두는 소녀, 알렉산드라
감독이 사전 조사를 위해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 만난 90세 할머니(알렉산드라)가 실제 그 소녀의 모델이라고 합니다.
당시 아이들이라서 의심이 덜하기도 하고, 포로들을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위험이 덜한 밤에 몰래 음식을 숨겨두었다고 합니다.
감독과 제작진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3년간 사전조사를 하고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았다고 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회스 가족들이 살았던 집을 최대한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서 수용소 근처 건물을 수리하고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미리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실험적이지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이 영화는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음향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뜻은 관심지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40km² 구역을 뜻하는 용어라고 합니다.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수용소 내부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레임 외부에 수용소를 위치해 두고 관객들이 피해자의 입장에 몰입하기보다는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담장 안 회스의 집은 평온해 보이지만 담장 너머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회스의 가족들은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이런 모습에게 관객들은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는 그들은 피해자들에게는 악마이지만 아무 정보를 모르는 채 보면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회스 가족이 수용소 바로 옆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체제에 순응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인간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루돌프 회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회스 이름은 나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당신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말을 하는데요, 이 속에 담긴 의미는 당신 역시 나와 같은 전범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독은 관객의 감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지 않다며 배우의 감정신에서도 클로즈업을 피해 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조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밤에 음식을 숨기는 소녀의 모습을 열감지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은 다른 장면들과는 대비가 되면서 인간의 선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잔인한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지만 사운드를 포함한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서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 섬뜩하게 보이는 영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시각적인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는 사운드와 음악의 표현이 더 중요한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사운도도 하나의 영화라고 표현한 감독의 의도가 잘 담겨있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는 듣기 힘들 정도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음향으로 가득 채우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관객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