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진실게임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아들 아르망이 다니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이동하는 중입니다.
교실로 들어선 엘리자베스를 담당 교사인 순나가 맞이합니다.
순나는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학부모님이 온 후에 상황 설명을 해주겠다고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하는 엘리자베스는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손톱을 물어뜯게 됩니다.
그녀의 불안함 마음을 증폭시키듯, 복도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욘의 부모인 사라와 앤더스가 교실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순나는 아르망이 친구 욘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럴리가 없다고, 무슨 근거로 고작 6살인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이냐며 따져 묻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르망이 이전에도 문제적 행동을 했었다면서 아르망이 욘에게 폭력을 가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합니다.
사라는 욘이 '아르망이 그랬다'라고 말했다면서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달라고 하고 학교 관계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대화로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심리극
감독인 하프단 울만 톤델 감독은 초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으로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르망에게서 시작된 사건을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인물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확장해 갑니다.
실제 사건의 당사자인 아이들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사건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않은 어른들의 진실공방전으로 이어갑니다.
그리고 추측만 가득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영화 중반에 엘리자베스의 남편 토마스가 최근 사고를 당해 죽었으며, 토마스는 사라의 오빠라는 인물들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사라는 엘리자베스가 배우라는 점을 두고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만들어 낸 오해는 토마스가 엘리자베스 때문에 자살을 한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사라는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처럼 포장해서 엘리자베스를 고통스러운 상황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사랑과 학대, 놀이와 폭력, 진실과 거짓, 경계가 모호한 문제들 사이에서 관객들도 방황하게 됩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진실이 어떻게 재해석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의 화재경보기가 고장 나서 오작동되는데 학교가 아이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교장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순나에게 제대로 대답해주지도 못합니다.
교장은 난감해하는 순나에게 일을 맡기면서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하고, 태도는 외교적으로, 사적인 의견을 삼가라고 조언하지만 그는 사적인 감정을 담아서 사건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르망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기정사실화를 한 상태에서 사건을 대하는 모습에서 그저 빨리 마무리하고 학교가 조용해지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엘리자베스 혼자만 아르망의 결백을 주장해 고립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는 상반되게 마지막에는 빗속으로 뛰어들어간 그녀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그녀 옆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만 혼자 남게 됩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달라진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갑자기 엘리자베스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장면들은 엘리자베스의 정신 상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이제부터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오는 춤 장면에서는 엘리자베스가 느끼는 삶의 모습과 과거를 묘사하면서 결국 그녀가 자유로워지고 트라우마를 뒤로 남겨두고 떠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표면에서 보면 참 혼란스러워 보일 거예요. 더 깊이 들여다봐도 여전히 좋을 게 없죠.
하지만 딱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우리가 괜찮아 보일 거예요'
영화 속 학교의 모습은 쏟아지는 가짜 뉴스 속에서 진실을 보는 눈이 흐려지게 만드는 현실과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작은 정보의 파편만을 활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정체성과 삶에 맞춰서 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에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후기 (0) | 2025.03.22 |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후기 (0) | 2025.03.21 |
가까운 듯 먼 듯한 관계, 괴인 후기 (3) | 2025.03.21 |
균형의 조정,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1) | 2025.03.17 |
가족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 언니 유정 후기 (0) | 2025.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