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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가족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 언니 유정 후기

by mobeemoon 202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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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정해일

출연 : 박예영, 이하은, 김이경

 

다 안다고 생각했어, 우린 가족이니까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언니 '유정'과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동생 '기정'은 다른 가족 없이 둘만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정과 기정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기보다는 현관에 용돈이나 메모를 붙여놓는 방법으로 소통을 합니다.

학교 화장실에서 미숙아를 낳고 방치한 혐의로 기정이 체포되고 유정은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이 한 일이라며 자백을 한 기정은 조사 과정에서는 입을 다물고, 유정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 기정과 친하게 지냈던 희진을 찾아갑니다.

희진을 통해서 유정은 자신이 동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동생을 알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가족에게도 전하지 못한 진심이 있다

영화에서는 '영아 유기'라는 사건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관계가 형성되고 진심으로 소통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엄마의 납골당을 찾은 유정은 기정이 엄마를 자주 찾아갔던 것을 알게 됩니다.

기정이 가족이 주는 안정감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고 내면에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유정은 기정을 찾아가 마주 앉아 대화를 합니다.

유정은 어릴 적 엄마가 아침마다 용돈을 준 이유, 출근 전에 일어나지 않으면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해서였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서 기정에 대한 진심을 꺼내봅니다.

현관에 붙여둔 용돈의 의미, 그게 없어지면 학교에 잘 갔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면서 앞으로는 용돈을 직접 주겠다고, 너에 대해 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정에게 자신이 기다릴 테니까 늦지 않게 말해달라고 합니다.

유정과 기정이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기 위한 소통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유정은 사건 이후 기정의 처벌을 감형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정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기정관의 관계에 집중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기정이 태어나면서 엄마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유정도 기정과 마찬가지로 보살펴주는 부모가 없는 상태로 성장기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유정의 선택은 자신이 겪었던 외로움을 기정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다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매가 서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게 만드는 인물로는 희진이 있습니다.

희진은 사건 당시 기정과 함께 있었고, 유정에게 기정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가 중요하고 동생에 대해 충분히 모르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존재입니다.

희진은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인 표현으로 유정이 기정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정과 기정, 희진이 식당에서 함께 미역국을 먹는데 세 사람은 유사 가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지만 같이 앉아 밥을 먹고 함께 시간으로 보내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하는 관계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졌지만 학교의 입장은 학생 개인의 문제일 뿐이고 면학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을 씁니다.

관련 조사를 진행할 때도 같은 반 학생들을 다 불러서 면담을 하지 않고 '그럴만한 아이들'만 뽑아서 데려가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의 존재가 없었기에 기정과 희진은 도움 요청을 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유정의 직장 환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휴가를 3개월 전에 미리 신청해야 허락해 주고, 임신도 순서를 정해서 해야 할 정도로 강압적이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근무 환경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휴가를 쓰지 못한 유정은 동생이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옆에 있어주지 못합니다.

 

영화에서는 임신중독증으로 힘들어하는 산모가 유정의 담당 환자로 나옵니다.

그녀는 만약 자신과 아기 둘 중 하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아기가 잘못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합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없다면 아기가 너무 불쌍할 거란 이유에서 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고 난 뒤 유정은 그녀에게 사산아의 경우 법적인 인간으로 볼 수 없어 산모의 신체 일부로 분류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인수증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아기의 시신을 화장실에 유기해서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기정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생명의 잉태와 탄생 과정의 무게감을 느끼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알려고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관계가 더 많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계속 궁금해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그 노력을 통해서 진심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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